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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주이야기/제주의 이모저모

구시물

작은항해자 2010. 6. 5. 19:06

[구시]란 나무나 돌로 수로를 파서 만든 것을 뜻하는데 이 물은 삼별초 항쟁 당시 옹성물과 더불어 삼별초 군의 식수로 이용하였고 토성 밖인데도 또 작은 성을 쌓아 나무로 구시를 만들어 병사나 사녀의 이용수로 관리하였다고 한다. 지금은 구시물 주위에 샇았던 성이 흔적 밖에 없고 구시가 돌로 대체되어 있으나 93년 2월 당시에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시통이 발견되어 삼별초 군 및 몽리 주민의 식수로 사용했었음을 알 수 있다. 또한 이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질 좋은 생수라 그 옛날 콜레라가 돌 때도 이 지역은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고 구전되어지고 있다.


김통정장군이 항바드리 토성을 구축할 때 외성으로 에워싸서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. 고성리가 설촌된 이래 1880년경에 나무 구시(길게 판 홈통)를 시설하여 처음 이용하였다. 1928년에는 가뭄이 심하여 금덕(유수암), 광령 등 이웃 마을에서도 이 물을 음용수로 이용했으며, 용출량이 부족할 때는 마을 청년들이 밤을 새워가며 물을 지키기도 하고 배급하기도 했다고 한다.(애월읍지 502쪽) 이 물은 수질이 깨끗하여 제주도 전체에 콜레라가 만연하여 수천명의 사망자가 날 때에도 이 물을 마시는 마을 주민들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.
1992년년 2월에는 고려시대에 설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구시가 현재의 길 아래쪽 뻘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의 돌 구시와 모양이 거의 같았다.
(고영철의 역사교실(http://jejuhistory.co.kr) 참조)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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